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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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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튼호텔] 박효남셰프님 프랑스 요리, 하면 할수록 우리 맛이 생각나요"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니 흙 밟고 풀 뜯고 놀러 다니던 기억이 어린 시절 재산이에요. 8월에 태어난 소띠라서 일을 많이 합니다. 일복은 타고 나서 평생 잠 잘 시간이 부족하게 살아 왔지만 무엇을 하든 늘 그 공간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해 왔어요."   지금은 '스타 셰프'라는 표현이 흔해졌지만 훨씬 앞선 10여 년 전부터 이미 팬이 생겨나기 시작한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의 박효남 셰프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맛을 만들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자라면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학자들은 늘 이야기해 왔다. 특히 예술직의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절대적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화가나 음악가들을 보면 어릴 적 살았던 곳, 가족관계, 교육방법 등이 그가 자라서 만들어 내는 화풍이나 음악적 특성에 잘 녹아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술직의 하나로 인정받는 요리도 그렇다 할 수 있다.   강원도 고성에서 나고 자란 이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도심 특급 호텔의 임원직에 오르고, 한국 프랑스 요리의 선생님이 되고, 외국 국빈급 만찬을 지휘하는 수장이 된 지금도 맨 땅을 내달리던 그 감촉과 풀 냄새, 물 흐르던 소리와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던 자동차 뿌연 먼지가 영원한 영감이다. 그래서 그의 요리에는 허세 대신 진심이 담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프랑스 요리의 기본을 따랐는데, 먹고 나면 무언가 친숙하고 다정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단 있는 시골 아이였던 박 셰프는 1970년대 말 막연한 희망을 안고 주방에 입문하게 된다. 그 때 만났던 서양인 셰프의 손끝에서 척척 만들어지던 프랑스 요리는 그를 매료시켰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맛이 성격에 맞았어요. 주방에서 몇 시간을 끓이고 고아서 진액을 만들고는 그것을 기본으로 깊은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죠. 제게는 프랑스 요리가 일이 아닌 도취의 대상으로 시작되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프랑스 요리 인생은 83년 힐튼호텔의 프랑스 레스토랑 시즌즈(02-317-3060)의 오픈으로 이어진다. 힐튼호텔 입사 당시 주방의 수장이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조셉 하우스 버거 셰프를 스승이라 말하는 박 셰프는 요리를 위해 헌신하던 스승의 자세가 그를 감동시켰다 말한다.   자연과 벗하며 자란 소박함에 요리를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더해지면서 박 셰프의 요리는 제 맛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커다란 호텔식당이지만 늘 '내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인의식 없이 출퇴근만 하는 요리사는 철새와 같이 쓸쓸한 존재에요. 이 주방의 주인은 나라는 마음을 먹으면 손님들과의 관계를 저절로 쌓게 됩니다."                         주방에 있는 요리사와 홀에 앉은 손님은 일면식이 없는 가운데 한 접시의 요리로 소통을 한다. 먼저 요리가 나오면 손님의 입장에서는 요리사의 입맛이나 취향을 가늠해 볼 수 있으며 식사를 마치고 주방으로 되돌아온 접시를 보면 손님의 입맛과 취향을 어렴풋하게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손님마다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기억하고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다음 번 제 주방에 오시면 기억했던 대로 음식에 변화를 줘서 대접을 했지요."   지난 번 그 메뉴를 똑같이 주문했는데 무언가 내 입맛을 배려한 변화가 느껴질 때, 손님은 소스까지 빵으로 찍어 먹고 싹 비운 접시로 감사를 표한다. 때로는 셰프를 직접 보고 인사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온전히 손끝과 혀끝으로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요리다.   유행이 변하고 손님들의 입맛도 변하게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 셰프는 책을 많이 보고 세계 음식의 추세를 찾아 두루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셰프 본인이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장(醬). 프랑스 요리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우리나라 고유의 맛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는데.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이 땅에서 자라면서 입에 배어 있는 것은 장이니까요. 우리 음식을 어떻게 하면 프랑스 요리처럼 세계적인 미식가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이 생깁니다."   하루 중 자는 시간을 3시간만 두고 나머지를 음식 공부에 매달리는 셰프는 "내가 좋으니까 힘든 것을 모르겠다"는데. 그렇게 연구한 레시피로 국내외에서 유수의 만찬을 이끌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8월 미국에서 열렸던 세계적인 골프선수들의 만찬이었는데, 메뉴는 한식이었다고.   "한국 음식과 프랑스 요리는 진한 맛을 살린다는 점과 우아하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실제로 지난 8월 만찬에서 비제이 싱이나 타이거 우즈 같은 유명 선수들이 한식을 먹고 난 후 기립박수를 쳐 주셨을 정도로 한식은 가능성이 가득한 맛입니다."   우리 음식이 널리 알려지면 따라서 인기가 올라가는 것이 우리 농산물이다. 우리 농산물을 해외 요리사들이 찾게 되는 날, 그만큼 우리의 국력도 커져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박 셰프는 프랑스 요리?만들 때에도 대부분 우리 농산물을 이용하고 있다.   세 자제 가운데 둘은 국악을 하고, 한 명은 조리과학고에 재학 중이라는 셰프는 공부에 관한 강요를 하지 않는 것이 그의 교육 방법이라고. 그가 차곡차곡 모아온 모든 손맛의 비결은 꼭 내 자식이 아니어도 열정이 있는 요리사라면 누구에게나 전수할 생각이란다.                                                                                          "요리사는 맛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요리는 프로의 세계이고, 그 세계에서 무기는 혀 아닙니까. 혀를 관리하는 것은 프로의 생명이지요."   박 셰프는 실제로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건강관리를 위해 배드민턴을 치거나 등산을 가는 등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긴장의 연속인 주방에서 마인드 컨트롤은 필수. 늘 나도 나를 잘 모른다는 겸손한 자세로 손님들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이다.                                                             "내 음식에 돌아오는 반응은 가슴을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방에서는 누구나 경쟁자에요. 그 가운데 오픈 마인드인 사람, 그리하여 어떤 피드백이나 코멘트도 자기 발전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돋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 주방을 떠나지 않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 아닌 계획이라는 박 셰프는 물과 불과 모든 기물을 벗 삼아 익어가고 싶다고. 프랑스 요리 경력 30년의 셰프가 우리 농산물과 발효 음식을 또 어떻게 세계에 알려줄 지 기대하는 내게 박 셰프가 들려준 앞으로의 계획은 흙길을 내달리던 그 시절처럼 소박한 것이었다.     출처 – 한국일보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eatgamsa@gmail.com) , 사진 임우석(imwoo528@gmail.com)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raal&logNo=220135502552

  • 페란 아드리아 [Ferran Adria] - El bulli 정지된 하얀 거품,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이 뒤섞인 장난감 같은 디저트, 수프라는 문자장식을 단 핑크색 딸기 머랭 후식, 사라져버리는 라비올리, 돌맹이 같은 얼음조각, 분명히 올리브 모양을 했는데 올리브가 아닌 어떤 것. 여기 요리와 재료를 분석해 과학적으로 맛과 멋을 재창조하는 분자요리의 세계가 있다. 좀 더 친절히 말해줘야겠다. 전술한 올리브 요리의 정체는 '올리브 스페리코.' 생 올리브를 주스 형태로 변형시키고 올리브 주스의 표현에 얇은 젤리를 형성시킨 후 레몬과 각종 향신료를 넣은 올리브 오일에 12시간 재워둔 음식이다. 생 올리브의 맛과 질감을 상상하고 이 덩어리를 입에 넣으면 신선한 향과 맛이 입안에서 터진다. 그리고 침샘은 열렬히 반응한다. 처음 경험하는 생소한 맛일지라도, 침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페란 아드리아는 이 분자요리의 대가다. 음식을 공처럼 만들거나 젤리처럼 굳히고, 물과 기름을 섞어 에멀젼을 만들기도 하고, 까다로운 보글보글 거품도 자유자재로 다룬다.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면 혼쭐이 나는 줄 알고 자란 한국 정서엔 다소 위배되는 이 요리들은 사실 장난을 넘어 예술 대접을 받고 있다. 요리사와 레스토랑 운영자를 타겟으로 발행되는 <레스토랑>이란 잡지에선 매년 올해의 레스토랑 50을 선정해 발표한다. 2002, 2006, 2007, 2009년에 1위, 2011년에 2위를 기록한 식당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해변가 시골마을인 카탈루냐 지방의 엘 불리(El Bulli). 1년에 6개월만 운영되며 좌석 수는 단지 50석. 게다가 저녁식사만 제공했기 때문에 시즌 당 8천명의 예약만 받았다. 따라서 예약 대기는 최소 1년이었고, 단 하루 열리는 예약기간에 50만 명 이상이 몰리곤 했다. 미슐랭 가이드의 최고 등급인 별 세 개를 14년 동안이나 유지한 전설의 레스토랑 엘 불리는 이제 2011년 7월 30일부로 폐점해 더 이상 순위권에 진입하기는 힘들어졌다. 다만 2014년인 올해 분자요리 연구소로 용도를 변경해 그 명맥을 이을 거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전설적인 식당의 쉐프가 아드리아였다.   아드리아는 1962년생으로 19세이던 1980년에 접시 닦는 일부터 시작해 요리계에 입문한다. 고등학교는 자퇴했고 정규적인 요리 교육을 받았다고도 할 수 없다. 바르셀로나의 여러 레스토랑을 전전하다 군대를 갔고, 제대 후인 1983년, 어린나이에 엘 불리의 보조 요리사로 입사한다. 매니저인 홀리 술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바로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고, 2년 후엔 파트 쉐프가, 87년에 쉐프이던 크리스티앙 루투드가 식당을 떠나면서 아드리아는 엘 불리의 유일한 쉐프가 됐다. 지금의 아드리아를 만든 더 극적인 계기는 1992년 조각가 친구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였다. 예술가가 창작물을 만들듯 요리에 접근하게 된 것. 그 이래 아드리아의 창의력은 불꽃을 장착하게 됐고, 매해 일 년중 절반 이상의 폐점기간을 유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집 연구했고, 그 결과로서 소위 "테크노-컨셉츄얼"예술로서의 요리를 만들게 된 것.  그 결과는 앞에서 나열한 바와 같다. 매년 각종 요식업계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요리의 역사를 새로 쓰고, 급기야 하버드 대학교에서 요리물리학을 강의하기에까지 이른다. 요리계의 스티브 잡스 내지는 살바도르 달리라 불리는 이의 전시는 그러고 보면 딱히 어색한 일도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요리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던 창의적 천재 쉐프 페란 아드리아. 뉴욕 드로잉 센터에서는 그의 요리대신 드로잉을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의 드로잉을 두고 묘사실력이 출중하다거나 선이나 색 감각이 살아있다는 미술 전문가적 견지의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애당초 이 드로잉의 목적은 시각적인 부분보다는 미각적인 부분에 좀 더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화가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요리사에게 멋있는 그림을 그려내라 요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기교적으로는 다소 떨어지는 이 생생한 드로잉들은 확실히 '살아있'고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짜 창의적인 요리는 새로울 뿐만 아니라 재미있어야 한다"는 아드리아의 요리철학을 종이 위에 재현한 부산물이기에 당연하다. 과학자의 연구노트처럼 알 수 없는 기호며 단어가 가득한 다이어그램이며, 벌레가 꿈틀대는 모양 같기도 하고, 복작복작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는 플레이팅 다이어그램. 주방의 혁신 이론이라며 초등학생 그림처럼 한배에 탄 선원들을 그려넣기도 했다. 알쏭달쏭 정신없지만, 확실한 건 이 드로잉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접시마다 손님들은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뉴욕의 드로잉센터를 시작으로 5월엔 LA의 에이스 미술관, 9월엔 클리블랜드 미술관, 2015년엔 미네아폴리스 미술관, 2016년엔 네덜란드의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미주를 지나 세계투어를 떠나게 될 용한 작품들이다. 수백 권의 노트에 그리고 쓰면서 연구했던 한 천재 쉐프의 흔적이 큐레이팅의 힘을 얻어 예술 반열에 오르는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전시엔 "워킹 보드"라는 이름으로 엘 불리에서의 기록 사진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 보드는 엘 불리 레스토랑에서 메뉴개발을 위한 리서치를 정리하고 문서화하기 위해 실제로 사용되던 도구라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실제 엘 불리 메뉴를 위해 제작한 드로잉과 추상적인 플레이팅 드로잉을 아드리아의 <복숭아 멜바(Peach Melba)>프로젝트로부터 추출해냈다. 드로잉 센터 랩에선 아드리아에 대한 80분짜리 영상과 엘 불리의 요리들을 담은 90분짜리 영상 두 편이 전시 기간 내내 상영되기도 한다.  한 때, 중국에서 가짜 계란이 유통돼 온 세상이 놀란 바 있다. 아마 그 가짜 계란 개발자가 때와 장소를 잘 만났다면 분자요리사가 될 수 있었을 게다. 가짜 계란도 좀 더 먹을 만하게 포장해 정식 레스토랑에서 선보였다면 혁신적인 요리가 됐을 거란 말이다. 물론 가정은 가정에 그치고, 가짜 계란의 개발자는 범죄자로 삶을 마치게 됐지만. 아드리아의 예술성도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준 엘 불리라는 선물 같은 레스토랑과 그 재치 넘치고 도발적인 음식을 즐겨준 손님들 덕에 발현될 수 있었다. 그 모든 만남과 열정, 사랑이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전 세계 다양한 식도락가들의 입 속에 침이 한가득 고이게 한다. 엘 불리는 폐점했지만, 바로셀로나에 '티켓츠'란 타파스 식당을 열어 대중과의 접근성은 높였으니 아드리아의 요리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기쁜 소식도 함께 전한다.     -갤러리아 3월호           출처 - http://nayun2006.egloos.com/viewer/5791850

  • 음식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셰프, 류훈덕을 만나다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엘리트 요리사 류훈덕 셰프. 그는 손님과의 ‘이심전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손님이 접시를 보는 순간 셰프의 마음이 보일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싶다는 류훈덕 셰프. 본인의 요리에 허브 잎 하나도 허투루 놓는 법이 없는 류훈덕 셰프를 만나 보았다. 요리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전자 공학을 했어요. 사실 속으로는 요리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요리학원에 가서 요리를 배우다가 호텔에 입사하게 됐어요. 르꼬르동 블루로 유학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호텔에서 근무를 하시다가 다녀오신 건가요? 호텔에서 근무를 하면서 지식과 기술에 대한 욕망을 채울 수가 없었어요. 프렌치, 이태리 음식을 만들면서 그 음식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구요.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죠. 원래는 호텔에 다니면서 대학에 편입해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기왕 공부를 하는 김에 해외로 나가서 문화적 경험을 하는 게 어떨까 싶어 유학을 알아보게 됐어요. 음식이라는 건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그 음식이 탄생한 나라의 기형, 지형,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어요. 단순히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드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어요. 많은 유명 조리학교 중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을 가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싶었어요. 르 꼬르동 블루는 학교를 다니면서 주 20시간 일을 할 수 있어요. 르 꼬르동 블루로의 진학을 선택하고 어느 나라의 르 꼬르동 블루로 갈지 많은 고민을 했죠. 제 선택은 시드니였어요. 시드니에는 다국적 인종이 있어 더욱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시드니 르 꼬르동 블루에서의 수업이 어떤 메리트가 있었나요? 제 예상대로 프렌치의 특성은 살아 있되, 다양성이 있었어요. 교수님들은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계셨는데, 각 국적의 색깔이 묻어난 프렌치를 배울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요. 교수님께서 독일분이시면 본 고장인 프랑스에, 독일에서 호주에서 각각 어떻게 먹는다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프랑스 음식, 프랑스의 음식을 독일에 맞게 현지화한 음식, 호주에 맞게 현지화한 음식 3가지를 동시에 배울 수 있었죠. 르 꼬르동 블루를 다녀오신 것을 기점으로 전과 후를 비교해보았을 때 요리에 대한 가치관이나 관점이 달라졌나요? 자신감이 생겼어요. 기본을 아는 것에 대한 차이는 매우 커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 셰프 10명에게 홀렌다이즈 소스를 만들라고 시켰을 때 10명은 모두 다르게 홀렌다이즈 소스를 만들거에요. 그런데 그 소스가 왜 탄생했는지, 왜 그렇게 만드는지, 어떤 요리와 매칭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잘 없어요. 또, 음식의 정체성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음식을 현지화시킬 때 본래 음식에서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할지와 같은 음식에 상품성을 더하는 아이디어를 많이 떠올릴 수 있게 됐어요. 셰프님은 어떤 방법으로 음식을 이해하시나요? 저는 음식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정말 많은 노력을 들였어요. 어떠한 요리의 본고장에 가서 숨 쉬는 공기부터 햇살, 손에 닿는 모든 촉각들까지 감성적인 부분부터 마음에 담아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의 유명한 치즈를 이용한다고 했을 때, 프랑스 치즈 농장에서 소를 키우는 모습, 우유를 짜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먹는 것과 그냥 치즈만 접하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어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 공간에 가서 감성적인 부분을 많이 느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또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해요.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그 지역의 색깔이 담긴 책을 반드시 사요. 책 안에 제가 원하는 답이 있는 것 같아요. 원메뉴에 대한 이해 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경험해보려고 해요. 현지화를 시킬 때도 본토의 방식으로 먼저 만들어서 맛본 후 변화를 주려고 하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 어떠한 부분에 중점을 두시나요? 음식은 본토인이 먹었을 때 이질감이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본토에서 먹었을 때만큼 맛있진 않아도 이질감이 들어서는 안돼요. 기본적으로 그 음식이 가진 맥락은 가지고 가야해요.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나요? 제가 항상 저랑 같이 일하는 요리사들에게 요리사는 반드시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말해요. 철학과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죠. 어떻게 보면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요리사라는 직업은 사실 항상 평가 받는 직업이에요. 미술작품이나 도자기 같은 예술 작품은 완성한 순간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평가가 가능하죠. 하지만 음식이라는 것은 몇 분 사이에 평가가 이루어지고 끝나버려요. 내 음식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이 없다면 고객이 불만을 가진 부분이 단순한 컴플레인인지, 가치가 있는 시정할 의견인지가 구분이 안 가거든요. 류훈덕 셰프님의 요리에 대한 철학이 궁금하네요. 철학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현재 저희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도 쓰여있는데, “thinking like a artist, do it as a professional” “예술가처럼 창작하고 프로답게 만들자”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가지고 있어요. 제가 정말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손님들이 맛있어하는 음식이 있으면 그것만 하지 왜 다른 것을 또 하냐”에요. 그렇지만 저는 항상 예술적으로 생각하고, 창작을 해야한다는 게 제 신념이죠. 완전히 새로운 창작만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가치관과 본인의 색 안에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바에요. 본인이 가진 색깔 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에도불구하고 요리사는 계속해서 본인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력은 당연히 있어야 하구요. 본인의 철학이 가장 잘 담긴 요리를 소개해 주세요. 제 시그니처 메뉴로는 비프 웰링턴이 있어요. 영국 음식인 비프 웰링턴의 매력 포인트들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한국에 맞게 현지화를 시켰죠. 비프 웰링턴 안에 쓰이는 버섯 뒥셸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양송이버섯만 사용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버섯이라고 생각되는 표고버섯을 사용해요. 표고버섯만 사용하면 너무 향이 진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매력적인 포인트로 느껴질 수 있도록 황금팽이버섯, 양송이버섯, 만가닥버섯 등 다양한 버섯을 함께 사용하죠. 영국 사람들에겐 새로운 맛일 것이고, 한국 사람들에겐 익숙한 향 일거에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매우 큰 차이를 가지고 있어요. 식재료를 직접 보러 많이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그 중에서도 잡어라고 불리는 대중적이지 않은 생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다고 들었는데, 대중적인 생선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에서 매력이 있나요? 저는 틈이 날 때마다 제주, 목포, 통영, 부산, 태안 등 대한민국 각지의 공판장 새벽 경매 시장에 가요. 서울 노량진, 가락동에서 볼 수 있는 생선들은 대부분이 대중적인 생선뿐이죠. 그런데 제가 가는 공판장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생선이 잡히나? 싶은 생선이 정말 많아요. 박스로 1-2만원이면 살 정도로 저렴한데 이런 독특한 생선들은 서울로 오질 못해요. 잡어라는 표현으로 불리고,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해 요리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요리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지방에서 매운탕이나 회로 사용되는 것이 전부에요. 대중적이지 않은 생선으로 만든 메뉴도 판매하시나요? 현재 제 레스토랑에서는 ‘성대’라는 생선을 사용한 메뉴가 있어요. 소금간만 하고 버터를 발라 구워내는데, 성대는 껍질이 두꺼워서 바삭하게 굽기가 좋아요. 손님 대부분이 성대를 낯설어하셔서 성대에 대한 설명부터 해드려요. 그런데 한 번 드신 손님들은 다시 찾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성대는 굉장히 담백하고 맛있는 생선이에요. 전라도에서는 반건조해서 쪄먹거나 매운탕으로 먹기도 해요. 또 지금은 판매하지 않지만 부채새우를 이용한 비스큐 소스나 보리멸을 이용한 요리도 있었어요. 대중적이지 않은 생선으로 만든 요리들은 조리법이나 레시피도 특별할 것 같아요. 레시피는 보통 어떤 방법으로 작성, 보관하고 계신가요? 우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핸드폰에 메모를 한 후에 문서로 정리해요. 간단한 단어들로 메모하기 때문에 남들은 알아보지 못해도 저는 알아볼 수 있어요. 약간의 암호처럼요. 레시피를 작성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어디인가요? 조리 순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조리의 핵심포인트가 되는 타이밍을요. 재료의 크기에 따라 가열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상태일 때 삶는지, 결과물의 최종이 어때야 하는지 서술하는 편이에요. 시간에 의지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셰프님께서 안 계실 땐 직원들이 그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텐데 셰프님과 어떤 부분이 제일 다른 것 같나요? 그 부분은 어떻게 보완하시나요? 이것도 역시나 조리 순서에요. 주방에서 일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단순노동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암기시켜요. 반복시키고 이해시키면서 스스로 훈련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단순히 지금 하고 있는 작업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그다음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초연결 사회, 로봇 사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조리 로봇이 점점 개발되어 가고 있고, 여러 사람들이 앞으로 없어질 직업에서 조리사를 꼽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인지 경험을 위한 음식인지에 대한 분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단순한 조리법의 음식은 로봇뿐만 아니라 밀키트 등 단순화가 진행되고 있고, 가격이 저렴해졌어요. 그러나 레스토랑에서는 고객 응대 서비스를 제공하죠. 로봇과 밀키트는 감성적인 부분의 동요를 불러일으키지 못해요. 어떻게 보면 레스토랑에서 음식이라는 것은 하나의 수단이에요. 고객이 돈을 내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 응대 서비스인데, 이건 감정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로봇이 할 수 없어요. 감성적인 부분을 이해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영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진 로봇에겐 어려운 일이죠. 반대로 휴게소 같은 경우에는 주문표를 받고 음식을 가지러 가고, 가져다주는데에 익숙해져 있어요. 이런 길들여져 있는 부분이 우선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될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과 방향성을 말씀해주세요. 호텔 크레센도만의 정체성이 있는 요리, 즉 이 곳을 시그니처가 확실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 단순히 밥 먹으러 오시는 게 아니라 이 공간에서 즐겼던 순간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도록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가장 잘하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손님들이 당당하게 지인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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